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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원uiwwsw · 작은 우주

사유와 일상

확언하지 않는 이유

누군가는 내게 말한다.

“조금 더 확신해서 말해. 네가 제일 잘 알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특히 무엇이 더 정확한가보다 누가 더 자신 있게 말하는지가 중요한 조직에서는, 내가 조금 더 단정적으로 말하고 상대의 말을 잘라내는 편이 일을 쉽게 만들 때가 있다.

“그건 아니고요. 이게 맞습니다.”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이 많다.

하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으려 한다.

흔히 이런 말이 있다.

“내 친절함을 나약함으로 착각하지 마라.”

나는 이 문장이 내 태도와 꽤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확언하지 않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도 내 판단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경계하는 것은 정반대의 일이다.

내가 조금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이유로 매번 확신하고, 그 확신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데 익숙해지는 것.

처음에는 일을 빨리 진행하기 위해 조금 더 단정적으로 말했을 뿐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반복되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내가 정말 옳아서 확신하는 것인지, 아니면 확신하는 사람처럼 말하는 데 익숙해진 것인지 점점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허세는 생각보다 자기 자신에게도 잘 통한다.

한 번 단정한 말을 지키기 위해 다음 단정이 필요하고,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설명을 만들어내다 보면 어느 순간 판단이 사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해버린 말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나는 그 상태가 두렵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보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더 두렵다.

그래서 나는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가능성이 높은 것은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확인하지 못한 것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다.

때로는 그런 태도가 자신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원하는 것은 상대를 눌러 이기는 소통이 아니다.

내 판단을 설명하되, 상대의 말을 들을 여지를 남기고, 내가 틀릴 가능성까지 열어둔 채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답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확신은 말을 강하게 만드는 좋은 도구다.

하지만 그 도구를 너무 자주 사용하면, 언젠가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내 확신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고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내가 말을 유보한다고 해서 그것을 자신 없음으로 착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확신할 줄 몰라서 확언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확신할 수 있는 순간에도, 그 확신이 나를 속이지 않도록 함부로 확신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윤창원이 벨로그에 남긴 글을 이 작은 우주에도 모았습니다. 사진은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원문의 전체 서식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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