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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원uiwwsw · 작은 우주

사유와 일상

“키 큰 남자가 좋아요” — 취향을 설명하는 언어

키 큰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은 요즘 인테리어 취향처럼 들릴 때가 있다. 조명은 너무 밝지 않은 게 좋고, 컵은 얇은 유리가 좋고, 남자는 키가 큰 쪽이 좋다는 식으로. 나는 그런 말을 듣다가, 사람이 자기 끌림을 설명하는 방식이 궁금해졌다.

보폭이 맞아서 좋다. 옷태가 살아서 좋다. 같이 서 있으면 그림이 예쁘다. 그것이 실제 이유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남의 마음을 한 문장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먼저 좋아한 뒤에, 그 마음에 어울리는 이유를 붙이기도 하지 않을까.

이 이야기는 키에 대한 선호 자체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신체적 특징에 끌린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취향이 잘못되는 것도 아니다. 내게 흥미로운 것은 끌림을 말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위계다.

누군가의 선호는 노골적인 욕망으로 부르면서, 나의 비슷한 선호에는 미감과 분위기라는 말을 붙이는 일. 좋아하는 마음보다 그 마음을 설명하는 어휘가 더 고상하다고 믿게 되는 순간.

그런 차이가 실제로 있는지, 아니면 내가 선택한 표현이 그렇게 느끼게 하는지 한 번쯤 묻고 싶다.

이 습관을 특정 성별만의 것으로 볼 근거는 없다. 외모, 지위, 취향을 대하는 말 어디에서든 생길 수 있고, 내 설명에도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유난히 정교한 이유를 붙이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욕망이라는 말이 꼭 저속함을 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끌리는 마음을 굳이 높은 취향으로 증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냥 좋다는 말로 충분한 순간이 있다.

불편한 것은 그 마음 자체보다, 비슷한 마음을 가진 다른 사람은 낮추면서 내 끌림만 세련된 것으로 설명하는 태도다. 문장이 점잖아졌다고 판단의 내용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본능’이라는 말을 빌렸지만, 특정 선호가 어떤 생물학적 원인으로 결정된다는 주장은 아니다. 설명보다 먼저 찾아오는 끌림을 가리키는 말에 가깝다.

어떤 설명을 듣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취향이라고 부르는 것 가운데에는, 잘 차려입은 본능도 있겠구나.

옷을 잘 입혔다는 이유만으로 남의 마음보다 고상해지는 것은 아닐 텐데.

Assisted by AI

윤창원이 벨로그에 남긴 글을 이 작은 우주에도 모았습니다. 사진은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원문의 전체 서식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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