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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원uiwwsw · 작은 우주

사유와 일상

코난과 숏박스

나는 ‘명탐정 코난’을 좋아한다.

살인과 범죄, ‘검은 조직’ 같은 거악(巨惡)을 다루는 추리물임에도, 아이러니하게도 이 만화를 보며 눈살이 찌푸려지는 순간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우선 코난의 세계에는 한없이 투명한 주인공들이 있다. 주인공과 아이들은 지나칠 만큼 순수하고, 미란이는 사랑 앞에서 아이들보다 더 수줍어하며, 유명한은 술과 예쁜 여자 앞에서 여전히 철없이 무너진다.

이토록 맑은 인물들 틈에서 살인은 잔혹한 ‘현실’이라기보다 해결해야 할 ‘사건’으로 치환된다. 덕분에 아이들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끝까지 순수함을 유지하고, 그 과도할 정도의 맑음이 이야기 전체에 기묘한 안정감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코난의 세계가 단순히 선(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절대악은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매화 등장하는 범인들에게서 분노보다 먼저 느껴지는 감정은 묘한 ‘인간적 허술함’이다.

우리가 이입하는 주인공들이 가공되지 않아 투명하게 빛나는 원석이라면, 범인들 역시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 또한 원석이지만, 어딘가 삐뚤게 깎여 뾰족하게 튀어나온 모서리를 지녔을 뿐이다. 나는 매끄러운 주인공들보다, 찔릴 듯 날이 선 그 모서리에서 오히려 더 짙은 인간미를 느낀다.

최근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숏박스’ 역시 비슷한 결의 편안함을 준다.

내가 즐겨 본 ‘장기연애’ 에피소드들에는 갈등 속에도 익숙한 관계가 남아 있는 편안함이 있었다. 현실의 구질구질함은 덜어내고, 권태 대신 익숙한 편안함만이 남았다. 설렘은 줄었을지언정 서로를 해치지 않는 관계, 그 무해함이 주는 안정감은 분명하다.

특히 숏박스 속 소위 ‘일진’이나 악역을 자처하는 캐릭터들은 코난의 범인들과 겹쳐 보인다. 그들은 시끄럽고, 폭력적이며, 위협적인 척 시비를 건다. 겉모습은 분명 ‘악역의 문법’을 따르지만, 숏박스는 그들을 끝내 나쁜 사람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거친 말투와 선을 넘는 훈수 이면에는 늘 묘한 ‘정(情)’이 깔려 있다. 서툰 표현과 과한 태도 때문에 삐걱거릴 뿐, 본심까지 악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시청자는 그들의 거친 행동보다 그 뒤에 숨은 의도를 먼저 보게 되고, 그래서 쉽게 미워할 수 없다.

이들은 악을 저지르는 인물이라기보다, 선의를 다루는 방식이 고장 난 사람들에 가깝다. 완성된 악마가 아니라, 아직 성질을 다듬지 못한 채 툭툭 튀어나온 모서리를 방치한 서툰 원석들인 것이다.

나는 성악설을 믿는 편이다. 인간은 본래 선하지 않으며, 상황과 이익 앞에서는 언제든 잔인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예고 없이 날카롭고, 타인의 악의는 종종 치명적이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코난과 숏박스처럼 악을 악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그 뾰족한 모서리조차 사연으로 감싸 안는 이야기들이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작품이 보여주는 사정이 현실의 폭력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물을 행동 하나로 끝내지 않는 이야기의 방식이, 경계가 앞서는 나에게는 위로가 된다.

Assisted by AI

윤창원이 벨로그에 남긴 글을 이 작은 우주에도 모았습니다. 사진은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원문의 전체 서식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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