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윤창원uiwwsw · 작은 우주

사유와 일상

역삼역의 워킹데드

퇴근 시간, 지하철역에서였다.

하루의 기운을 거의 다 써버린 얼굴들. 어딘가에 정신을 둔 채 발걸음만 옮기는 사람들 사이에 나도 섞여 있었다. 좀비물을 보던 시절의 버릇인지, 그 풍경이 문득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그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가족이 있었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그들은 웃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울었고, 유모차는 무겁게 끌렸고, 엄마 손에는 아이 가방이 들려 있었다. 누구라도 금세 지치고 예민해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웃음은 끊기지 않았다.

그들만큼은 삶의 감각을 놓지 않은 것 같았다. 괜히 조마조마한 눈으로 따라보게 됐다.

이내 지하철이 들어왔다. 그들은 자리에 앉았고, 대화는 이어졌고, 목소리는 조금씩 커졌다. 빽빽한 사람들도 흔들리는 전철도 그들에게는 멀찍한 배경처럼 느껴졌다.

그 자리가 노약자석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내가 보고 있던 장면의 인상도 달라졌다.

그 자리가 필요한 사정이 있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잠깐 본 모습으로 가족의 됨됨이를 판단할 수도 없다. 다만 그때 내게는, 일행 안에서 이어지는 생기와 주변 사람들에게 향하는 주의가 꼭 같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웃음이 눈에 들어왔고, 나중에는 그 웃음을 둘러싼 공간이 보였다.

Assisted by AI

윤창원이 벨로그에 남긴 글을 이 작은 우주에도 모았습니다. 사진은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원문의 전체 서식 보기 ↗

모든 글 둘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