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는 법을 배우는 것, 그리고 어린아이의 얼굴
우리는 정말로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나이를 먹을수록 키가 자라거나 지혜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숨기는 기술’**이 정교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법을 배우는 시간도 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고, 아픈 것을 아닌 척하며, 탐나는 것을 무관심한 척 흘려보낸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소리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의 모습에서 멀어질수록 사회는 우리에게 ‘어른스럽다’는 칭호를 부여한다.
그렇게 참아온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할 때가 있다. **“나 이만큼이나 참았어, 대단하지?”**라며 누군가 등이라도 토닥여주길 바라는 마음. 그것은 서류 가방을 든 중년의 신사나, 일터에서 완벽을 기하는 동료의 마음속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어린아이의 얼굴’이다.
인정받고 싶은 본능이라는 이름의 구원
높은 자리에 오르고 여러 일을 이룬 뒤에도, 애쓴 시간을 알아주는 말이 반가울 수 있다. 나는 그 마음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지 않던 행동도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에게는 자기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조급함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랑을 오래 하는 친구에게는 어렵게 해낸 일을 함께 기뻐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속마음을 내가 알아냈다는 뜻은 아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여러 가능성 중 하나다. 이유를 이해하려는 일과,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일도 구분해야 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비싼 선물
나는 어른의 단단한 얼굴 아래에도 이런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싶다.
내가 타인에게 건네는 따뜻한 대화나 진심 어린 인정은 결코 값싼 동정이 아니다. 상대가 애써온 시간을 알아보고, 그 이야기를 꺼낼 자리를 만드는 말일 수 있다.
가끔 우리는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과 닮아 있다. 들키고 싶지 않아 꽁꽁 숨어있으면서도, 누군가 기어이 나를 찾아내어 **“고생했어, 네가 여기 있는 걸 알아”**라고 말해주길 기다리는 존재들.
오늘도 ‘어른’이라는 연극을 무사히 마친 당신에게, 그리고 내 곁의 사람들에게 슬쩍 건네고 싶다. 그동안 참느라 고생했다고. 당신은 충분히 애쓰고 있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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