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종종 같은 얼굴로 오해받는다. 둘 다 ‘나’를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둘을 가르는 기준은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얼마나 살피느냐에 있다.
“나는 개인주의자야. 남한테 관심 없어. 그러니까 너도 나 신경 쓰지 마.”
각자의 삶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원하지 않는 관계까지 맺고 싶지는 않다. 다만 관심을 끊었다는 사실만으로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상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원 지하철을 떠올려보자. 남의 발을 밟지 않으려면 주변 사람들의 위치를 살피고, 가능한 범위에서 몸을 조정해야 한다. 누군가와 친해질 필요는 없어도 그 사람이 차지한 자리를 인식할 필요는 있다.
내가 말하는 관심은 이런 종류다. 상대의 삶을 캐묻는 관심이 아니라, 나의 행동이 닿는 곳에 기울이는 주의.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어떤 선을 넘으면 침범이 되는지, 내가 무심코 한 행동이 어디까지 영향을 주는지 알아야 비로소 ‘건드리지 않음’도 가능해진다. 내게 존중은 무관심보다 이런 관찰과 조정에 가깝다.
“그럴 생각은 없었어”라는 말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의도를 설명하면 오해를 풀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생긴 불편을 줄이거나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행동까지 그 말이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물론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과, 몸의 제약이나 다른 사정 때문에 하기 어려웠던 일의 책임은 같지 않다. 사정을 확인해야 누구에게 어떤 조정이 가능한지도 알 수 있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그 차이를 지워 사람을 탓하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 생긴 영향을 함께 줄이는 일이다.
개인의 경계를 존중하면서도, 서로에게 닿는 부분의 책임을 피하지 않는 태도. 나는 그것을 개인주의의 중요한 조건으로 생각한다.
“나는 여기까지다”를 말하기 위해서는 “너는 어디까지인지”도 알아야 한다.
함께 산다는 것은 내 의도가 선하다는 설명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의 결과를 계속 살피는 일에 가깝다. 가능한 한 덜 밟기 위해 시선을 낮추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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