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카페에서, 길 위에서 문득 불편해지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 가까이 지나갔다는 사실보다, 그 과정에서 내 존재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다.
각자의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원이 있는 것 같다. 누가 먼저 지나가야 하는지, 어디에서 잠시 멈추면 되는지, 내 목소리가 누구에게까지 닿는지. 그 미세한 조정이 함께 쓰는 공간을 편안하게 만든다.
그 선을 넘을 수밖에 없는 순간도 있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야 하고, 좁은 자리에서 몸이 닿기도 한다. 그럴 때 잠깐 눈을 맞추거나, “지나갈게요”라고 말하거나, 작은 사과의 몸짓을 건네는 사람이 있다.
내게 그 신호는 이런 뜻으로 읽힌다. “지금 나는 너를 인식하고 있어. 필요해서 네 영역을 잠시 지나간다.”
아주 작은 표현인데도, 같은 접촉이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아쉬운 것은 그 신호가 생략되는 장면이다. 주변에 누가 있든 그저 들어오고, 끼어들고, 스쳐 지나가는 모습. 자기 일행 안에서는 다정한데 그 바깥의 사람은 배경처럼 취급되는 순간도 있다.
아이와 함께 쓰는 공간에서도 나는 이 차이를 생각한다. 아이의 행동은 늘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순간적인 소란 자체보다,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보호자가 알아차리고 가능한 조정을 하려는지가 내게는 더 크게 느껴진다.
다만 짧은 장면만으로 그 가족의 사정을 알 수는 없다. 한 번의 행동을 보고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랄지까지 단정할 수도 없다. 이 문제를 특정 나라나 세대, 부모 전체의 성질로 설명하면 내가 말하고 싶은 구체적인 태도도 흐려진다.
내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이 공간에 나와 다른 사람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행동에 반영하는 감각이다. 관계를 맺거나 친해질 필요까지는 없어도, 서로에게 닿는 부분은 살필 수 있었으면 한다.
그 감각은 규칙을 아는 것과 함께 경험을 통해 익숙해질 것이다. 내가 무심코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닿았는지 듣고, 다음에는 조금 다르게 움직여보는 일.
보이지 않는 선을 말하려면 내 쪽의 원도 함께 봐야 한다. 상대에게 필요한 공간을 남기는지, 내 편안함을 다른 사람의 의무로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그런 조정이 자연스러운 곳에서 살고 싶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너도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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