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대개 먼저 위를 본다. 어느 나무가 더 높이 자랐는지, 얼마나 곧게 뻗었는지. 높이는 한눈에 읽힌다. 비교도 쉽다. 그래서 오래 사랑받는 기준이 된다.
반면 다른 것들은 시간이 걸린다. 줄기가 얼마나 단단한지, 가지가 어디로 휘는지, 어떤 그늘을 만드는지. 그런 건 잠깐 봐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자꾸 뒤로 밀린다.
그러는 사이 풍경은 금방 단순해진다. 높은 나무는 좋은 나무가 되고, 곧은 나무는 바른 나무가 된다. 낮게 자란 나무, 옆으로 넓게 퍼진 나무, 조금 비스듬한 각도로 선 나무는 보기 전에 먼저 평가를 받는다. 덜 자랐다. 애매하다. 고쳐야 한다. 숲을 보러 왔는데, 어느새 선발전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 버릇은 낯설지 않다. 우리는 너무 자주 높이를 가치로 착각한다. 위로 가는 속도를 성장이라고 부르고, 반듯한 모양을 정답처럼 여긴다. 그러니 아름다움도 점점 가난해진다. 다름의 문제가 아니라 서열의 문제가 되어버리니까.
하지만 숲은 원래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 숲은 맞춰진 곳이 아니라 섞인 곳이다. 낮지만 단단한 나무가 있고, 늦지만 깊게 퍼지는 가지가 있고, 곧지 않아 더 오래 보게 되는 모양이 있다. 아름다움은 원래 거기서 나온다. 같음이 아니라 차이에서.
요즘 어린 세대를 보고 있으면 그 사실을 먼저 알아챈 쪽은 어쩌면 그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눈여겨본 이들 중에는 꼭 위로만 자라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조금 낮아도 자기 색이 분명하면 그걸 멋이라고 말하고, 비스듬히 뻗은 방향도 굳이 펴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부족함으로 불렸을 것들이, 이제는 개성으로 남는다.
그 변화가 반갑다. 높이 말고 모양을 보는 이야기가 더 자주 들리는 것 같아서. 자를 들이대는 대신, 결을 보는 법을 조금씩 배우는 것 같아서.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거창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더 정확한 자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를 잠깐 내려놓는 일. 높이를 묻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 자라고 있는지를 보는 일. 곧은지보다 어떤 그늘을 만드는지를 보는 일.
나무는 원래 순위를 위해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만 자꾸 거기서 순서를 읽어낸다.
숲이 아름다운 이유는 가장 높은 나무 때문이 아니다. 서로 다른 높이, 서로 다른 결, 서로 다른 각도가 한 장면 안에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걸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순간, 풍경은 평가에서 벗어나고, 비로소 숲은 숲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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